<오후 풍경>(2020)과 <밤 산책>(2023)에 이은 손구용 감독의 세 번째 장편. 공간을 음미하고 자연만물에서 시정을 발견하는 시네마틱 산책자 손구용이 이번에는 공원으로 간다. 그의 손에는 오규원의 시 [뜰의 호흡]이 들려있다. ‘오후 2시 나비가 한 마리 저공으로 날았다’로 시작하는 24행의 시가 텍스트로 떠오르는 동안, 공원에는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고, 구름이 해를 가리고, 고양이가 세수를 하고, 물레방아가 돌고, 분수가 솟구치고, 잉어가 연못을 가로지르고, 개미가 부지런히 제 일을 한다. 활자의 세계와 이미지의 세계가 조화롭게 합일하는 ‘이 칠십 평의 우주’는 무의미로 완전무결하다. 손구용은 최소한의 것을 반복 변주 순환시켜 연약하게 반짝이는 투명한 세계를 우리 앞에 선보인다. 텅 비어있고 동시에 충만한 산책자의 정취.